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문단 편집) ==== 전처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Maria Barbara Bach, 1684–1720)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6촌 관계이며 바흐보다 1살 위이다. 게렌(Gehren)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조실부모하고 아른스타트의 친척 집에서 성장하였다. 마리아가 바흐를 만난 것은 19살때인 1703년으로 당시 바흐는 이 해 8월에 막 아른스타트 교회에 오르가니스트로 취직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으며, 마리아는 바흐의 오르간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앞서 생애편에서 아른스타트 교회에 취직한 바흐가 금녀의 구역이었던 성가대석에 여성을 데려가서 욕을 먹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문제의 여성이 바로 이 마리아 바르바라이다. 아른스타트에서 사사건건 교회측과 싸우면서 직업에 적응을 못했던 바흐는 4년 뒤인 1707년에 근무 조건이 훨씬 좋은 뮐하우젠으로 이직하면서 마리아를 같이 데려갔으며 뮐하우젠에 정착한 직후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상당히 행복했으며 쌍둥이를 포함 7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4명만 유년기를 넘겨 생존하였다. 마리아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의 여성으로, 결혼생활 내내 그 다혈질의 바흐와도 별로 부딪치지 않았을 정도로 유순하고 생활을 잘 꾸려나갔던 진정한 [[내조의 여왕]]이었다. 바이마르를 거쳐 1718년 쾨텐으로 옮긴 바흐 부부는 이제 행복을 즐길 일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결혼생활은 쾨텐에 온지 2년만인 1720년에 갑작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1720년 5월 바흐는 자신의 고용주인 레오폴트공이 칼스바드(Karlsbad)에 있는 온천에 휴가차 여행을 갈 때 동행했으며 2달 후에 쾨텐으로 복귀하였는데, 바흐는 집에 도착할 때쯤 아내 마리아가 급사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으며 황급하게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장례식까지 치른 상황이었다. 그녀가 36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마리아는 평소에 지병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남편이 업무차 여행을 떠날 때까지도 특별히 이상한 징후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문부호가 붙어 있다. 대체로 바흐 연구자들은 마리아가 전염병이나 식중독과 같은 급성 질환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아내와 행복하게 지냈으며 아내 덕분에 집안의 대소사를 잊고 음악 업무에만 신경썼던 바흐로서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리아의 사후 엉망이 되어 버린 집안일을 정리하고 아직 한참 어렸던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바흐는 17개월 후에 새로운 아내를 얻는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되는 내용 참조. 한편으로 몇몇 바흐 연구가는 그 유명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d단조의 5악장 [[샤콘느]]가 바로 이 마리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작곡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